[DreamsiC 10월 호] 기업 아이덴티티를 대중의 인식 속에 강하게 인식 시키는 사이니지



글자는 예로부터 생각을 전하는 기호체계의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예술의 영역이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나 석봉 한호와 같은 사람들은 명문가이기도 했지만 그 서체 자체가 예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것이 실력이자 경쟁력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떨까? 실제로 펜을 들어 글을 쓰는 경우보다 키보드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졌다. 글씨를 예쁘게 잘 쓰면 ‘우와~’ 하며 감탄을 받을 수 있겠으나 그 자체가 대단한 능력으로 인정되는 시대는 아니게 되었다. 수많은 글꼴을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시대에 글씨체는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쁜 글씨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글자가 가져가는 의미는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광고를 보면 사진을 예쁘게 찍고 눈에 띄는 카피를 쓰기위해 노력을 할지언정 글꼴 자체의 디자인에 신경을 쓴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최근 나오는 광고의 글씨체를 바탕체나 굴림체로만 바꿔도 레트로한 느낌을 풍기기에 충분할 것 같다.

 

글자는 디자인이며 브랜드다. 수많은 기업은 일 년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광고 및 마케팅비로 사용하며 브랜드명 몇 글자를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글꼴의 단위를 넘어 글자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계속된다. 디지털 사이니지를 통해 화려하게 브랜드를 보여주기도 하며, 드라마나 영화 중간에 소품처럼 광고상품을 보여주며(PPL) 은연중에 제품을 인지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광고 홍수 속에 콘크리트 사이니지는 전혀 새로운 접근으로 브랜드를 인지시킨다.

 

본디 사이니지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체계다. 교통표지판이 정확한 목적지를 안내 하 듯 정보를 명확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사이니지의 가장 큰 목표다. 브랜드의 간판은 브랜드명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브랜드 이름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은 사이니지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 브랜딩에 있어 ‘이름’은 기억시키는 것과 더불어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 ‘긍정적인 이미지’로 기억 시키는 것. 너무 노골적인 브랜드명의 노출은 브랜드 이미지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내 브랜드명만 서로 잘 보이기 위해 사이니지에 강조를 하다보면 도시경관은 점점 더 어지러워지기만 한다.

 


콘크리트 사이니지는 정반대의 접근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끈다. 평소에 말이 많던 사람이 말없이 조용히 있으면 오히려 주목을 받듯, 서로 잘 보이기 위해 화려해져만 가는 사이니지 속에 차분하고 은은한 콘크리트 사이니지는 오히려 돋보이기에 충분하다.


콘크리트 사이니지는 콘크리트의 성형성으로 인해 확장성이 넓은 표현력을 보여준다.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점은 규모. 자그마한 상가건물이든 초고층빌딩이든 건물은 대부분 콘크리트로 짓는다. 사이니지가 커봤자 콘크리트로 못 만들 제품은 없다! 다양한 규모의 사이니지는 멀리서도 주목받는 형태를 만들 수 있다. 비단 크기만 한 것이 아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담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H로도 보이고 Y로도 보이는 시계탑은 유명 이니셜을 담은 상징물이 되었다.



 

콘크리트는 글자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소재다. 콘크리트는 생각보다 글자를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음각과 양각을 통해 나타나는 글자는 매우 정교하며 매력적이다. 글자가 평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입체감을 가지기 때문에 색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더 주목을 받게 된다.


글자를 콘크리트로 만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콘크리트 사이니지는 충분히 돋보인다. 콘크리트가 만드는 다른 소재와의 조화는 글자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콘크리트가 배경이 되면 고무 스카시나 플라스틱, 목재 등 다른 소재로 만들어낸 간판 또는 활자 그대로가 훨씬 더 주목받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는 비단 콘크리트로 사이니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파사드로 콘크리트를 적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콘크리트 파사드 위에 간판이 적용될 경우 훨씬 주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이니지는 오랜 시간 변하지 않아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기업에는 길이 남는 정체성이자 상징물이 되어야 한다. 서울대학교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서울대 정문을 떠올리고, 광화문광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떠올리듯 기업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상징물은 매우 중요하다. 입체적 표현으로 그 어느 사이니지보다 주목도가 높으면서도 한없이 차분한 패턴으로 인해 오랜 시간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소재. 이름이 초고성능 콘크리트를 만나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